(마가복음 10:46-52) 소경

소경 바르티매오는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르는 소리를 듣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사람들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다나에게 말했다. 나사렛 예수는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추종자들과 구경꾼 무리들에게 있었습니다..

나사렛의 유대인 좋은 것날지 못했다고 한다. 부자가 예수님을 불러 영생을 구한 칭호입니다. 좋은 선생님첫 번째 줄(좋은)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행위입니다.. 너무 부자 무슨 좋은 <행동>해야 할 것그는 물었다. 그래서 예수 ?”다시 물었다. 그 질문은 내가 세상에서 복 받는 것을 좋게 생각하면서 왜 내가 세상의 저주인 십자가를 지고 있기 때문에 좋다고 말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의 기준은 영생을 구하고 돌아온 부자나 나사렛 예수라 부른 마음입니다.. 기대하는 자와 비판하는 자의 기준은 모두 영생을 구하는 부자의 기준과 같이 하나님께서 육신의 삶을 복 주시기를 원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민족독립이냐 가난이냐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가 예수 당시와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일한 그리스도다..

바르티매오 주변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과 서서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모두 이 깃발을 들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낮고 가난한 당신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하나님의 선하심이 없는 가난한 나사렛 예수가 그들의 기준에 따라 세상을 구원할지 알아보기 위해. 그게 기준이니까 예수 좋은 선생님이름을 짓다나사렛 예수~라고 불리는. 그리고 지금 교회에서는 세상을 행복하게 하시는 주님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달랐다.. 그는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왕 다윗의 자손이라 일컫는다.. 육신의 눈을 뜬 사람들은 육신의 행실이 세상의 유익을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바디매오는 육신이 어떠하든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제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메시아임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지만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예수 나사렛 예수바디매오는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끄럽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에게 닥치라고 꾸짖었다.. 그러나 그가 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말을 들으시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많은 군중 속에서도 여전히 누군가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을 아시고 부름을 들으셨습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셨을 때 바디매오는 겉옷을 벗고 도망쳤습니다.. 실명하는 것은 자살이다. 장애물이 보이지 않으면 달리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게다가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수많은 부딪힘, 넘어짐, 부상을 겪은 그가 자신의 소지품과 겉옷을 모두 버리고 소식에 답장을 보낸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것에서., 큰 믿음.

예수가 바르티매오에게 너를 구원한 믿음그 믿음이란. 단순히 위험을 무릅쓰는 용감한 행동이나, 그것을 이끌어낸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으로 믿고 자신이 처한 비참한 상황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예수의 정체성으로 보는 한 눈으로 믿음, 이 믿음이 그를 보게 했다. 예수님을 바로 알기 때문에 이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소경을 보는 것이 위에서 언급한 선 또는 육신의 복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것을 보고 세상의 모든 것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이 칭찬하신 믿음이 나사렛과 연결되었습니다., 부자의 영생과 관련된 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예수님을 부르며 호소한 안타까움은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몸 매오에게 이르시되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했습니다~라고 불리는.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믿으라, 이것이 구원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황금 병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셨다면, 혹은 자신의 힘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와 가난을 해결했다면, 예수님을 바라보며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유에서 태어나 천한 나사렛 사람으로 세상에서 가장 낮고, 가장 낮고, 가장 비참한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미친 짓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디매오를 통해 이것이 구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